페라리의 역사|레이싱을 하려고 자동차를 팔기 시작했을까

페라리는 자동차 회사보다 레이싱팀이 먼저였습니다.

1929년 엔초 페라리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레이싱팀을 만들었습니다. 이 팀은 자기 차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알파로메오의 차를 받아 경주에 내보내는 조직이었습니다.

페라리라는 이름을 단 자동차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18년 뒤인 1947년입니다.

레이싱팀이 먼저였다

엔초 페라리는 1898년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살 무렵 본 자동차 경주가 그의 방향을 정했다고 전해집니다.

스무 살 무렵 자동차 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일을 시작했고, 스포츠카 제조사로 옮겨 레이싱에 데뷔했습니다. 1920년대에는 알파로메오의 드라이버로 활동했습니다.

1929년 그는 자신의 레이싱팀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스쿠데리아 페라리였습니다. ‘스쿠데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마구간을 뜻하며 레이싱팀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이 팀은 알파로메오의 차량으로 경주에 나섰고, 1933년부터는 사실상 알파로메오의 공식 레이싱 조직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페라리 자동차 앞 펜더에 붙는 엠블럼의 ‘SF’는 이 팀 이름의 약자입니다. 자동차 회사가 생기기 전에 있던 조직의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셈입니다.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1939년 엔초 페라리는 알파로메오와 갈라섰습니다.

문제는 계약이었습니다. 결별 조건에 일정 기간 페라리라는 이름을 자동차나 레이싱에 쓸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름으로 회사를 세웠습니다. ‘아우토 아비오 코스트루치오니(Auto Avio Costruzioni)’라는 이름이었습니다. 1940년 이 회사에서 경주차를 만들었지만 페라리라는 이름은 붙이지 못했습니다.

전쟁 중이던 1943년 공장을 마라넬로로 옮겼습니다. 지금도 페라리의 본거지인 곳입니다.

1947년 5월, 마침내 페라리라는 이름을 단 첫 차가 나왔습니다. 125 S입니다. 1.5리터 V12 엔진을 얹은 차였고, 페라리 공식 자료는 이 차를 그의 이름을 단 첫 자동차로 설명합니다.

이 차도 처음부터 일반 고객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주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로용 GT로 본격적으로 이어진 모델은 1948년 등장한 166 인터였습니다. 페라리는 이 차를 첫 그랜드 투어링 로드카로 설명합니다.

그러면 왜 자동차를 팔았을까

엔초 페라리에게 자동차 판매와 레이싱은 처음부터 분리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레이싱은 그의 중심 목표였고, 자동차 판매는 그 활동을 지속시키는 사업 기반이 됐습니다. 모터스포츠에 드는 비용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습니다. 실제로 페라리는 1960년대 외부 기업과의 제휴를 논의할 때도 이 재정 부담을 배경으로 설명합니다.

페라리는 자동차 회사가 먼저 생기고 레이싱팀을 만든 순서가 아니었습니다. 레이싱팀이 먼저 있었고, 이후 시판차 사업이 더해졌습니다.

따라서 ‘레이싱을 하려고 차를 팔았다’는 표현은 페라리의 출발을 이해하기 쉽게 압축한 말입니다. 다만 자동차 판매의 유일한 목적이 레이싱 비용이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레이싱과 시판차 사업이 서로를 떠받치는 구조로 발전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순서는 지금도 회사의 구조에 남아 있습니다. 페라리는 여전히 F1 팀을 운영하면서 시판차를 만듭니다. 다른 제조사에게 모터스포츠가 마케팅이라면, 페라리에게는 시작점입니다.

도약하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1차 세계대전 비행사의 상징이었습니다.

프란체스코 바라카는 이탈리아의 전투기 조종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행기에 도약하는 말 문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바라카의 가족은 엔초 페라리에게 이 문양을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엔초 페라리는 여기에 자신의 고향인 모데나를 상징하는 노란색 바탕을 더했습니다. 검은 말과 노란 바탕이라는 조합이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자동차에는 1932년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알파로메오 경주차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페라리 자동차가 나오기 15년 전입니다.

지금도 왜 많이 만들지 않을까

적게 만드는 것이 회사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페라리는 연차보고서에서 이를 ‘저생산 전략(low volume strategy)’이라고 부릅니다. 생산하는 모델과 자동차 수를 제한하는 것이 브랜드의 희소성과 럭셔리 이미지를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전략이 판매와 이익을 제한한다는 점도 회사가 함께 밝힙니다. 더 팔 수 있는데 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024년 페라리의 판매 대수는 1만 3,752대였습니다.

처음에는 레이싱을 중심에 두고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뒤에도 판매량 확대만을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출발점과 현재 전략의 이유는 다르지만, 많이 파는 것보다 페라리만의 가치를 우선한다는 점에서는 흥미롭게 겹칩니다.

연도주요 사건
1898엔초 페라리,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출생
1929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 창설
1932도약하는 말 엠블럼이 자동차에 등장
1939알파로메오와 결별, 아우토 아비오 코스트루치오니 설립
1943공장을 마라넬로로 이전
1947페라리 이름을 단 첫 차 125 S 등장
1948첫 그랜드 투어링 로드카 166 인터 출시
1988엔초 페라리 별세

자주 잘못 알려진 내용

“페라리는 1947년에 시작된 회사다”

자동차 회사로 보면 그렇지만 조직의 시작은 1929년 스쿠데리아 페라리입니다. 엠블럼의 SF가 그 팀 이름의 약자이고, 도약하는 말도 자동차가 나오기 15년 전인 1932년에 처음 쓰였습니다.

“도약하는 말은 페라리가 만든 상징이다”

1차 세계대전 비행사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쓰던 문양입니다. 그의 가족이 엔초 페라리에게 사용을 권했고, 여기에 모데나를 상징하는 노란 바탕이 더해졌습니다.

“엔초 페라리는 처음부터 자기 이름으로 차를 만들었다”

1939년 알파로메오와 결별하면서 일정 기간 페라리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 이름으로 시작했고, 페라리라는 이름을 단 첫 차는 1947년에 나왔습니다.

“페라리는 수요가 많은데도 생산 능력이 부족해 적게 만든다”

의도적인 전략입니다. 페라리는 생산 모델과 대수를 제한하는 것이 브랜드 희소성의 핵심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이 전략이 판매와 이익을 제한한다는 점도 함께 설명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페라리 창업자는 누구인가요? 엔초 페라리입니다. 1929년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만들었고, 1947년 자신의 이름을 단 첫 자동차를 내놓았습니다.

페라리는 어느 나라 브랜드인가요? 이탈리아입니다. 본거지는 1943년부터 마라넬로입니다.

페라리 엠블럼의 말은 무슨 뜻인가요? 1차 세계대전 비행사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쓰던 문양입니다. 노란 바탕은 엔초 페라리의 고향 모데나를 상징합니다.

엠블럼의 SF는 무엇의 약자인가요?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입니다. 자동차 회사보다 먼저 만들어진 레이싱팀의 이름입니다.

한 줄 요약

페라리는 1929년 엔초 페라리가 만든 레이싱팀에서 출발해 1947년 자신의 이름을 단 첫 자동차를 내놓은 이탈리아 브랜드로, 오늘날에도 레이싱과 시판차 사업을 함께 이어가며 저생산 전략으로 희소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브랜드

참고 자료

  • 페라리 공식 역사 자료 (ferrari.com)
  • 페라리 공식 엠블럼 관련 자료
  • 페라리 연차보고서 (2024)
  • 엔초 페라리 생애 및 초기 레이싱 관련 언론 보도

작성 기준: 2026년 9월 26일

기업 정보와 제품 구성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최신 정보는 페라리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